내가 레페토(Repetto)를 알게 된 건 한 남자 때문이었다.
대학시절 같은 과 남자 선배에게 관심이 있었다.
짝사랑이라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나 혼자 학교 언저리에서 곁눈질로 그를 염탐하는 게 전부였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SNS를 체크하던 중 헉! 그가 자신의 연애 소식을 올려놓은 게 아닌가.
한 며칠을 씁쓸해하다가 이게 무슨 모양 빠지는 일인가 싶어 마음을 고쳐먹었다.
확실히 더 이상 그 둘의 연애 사진들을 보며 싱숭생숭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엉뚱한 포인트에서 또 한 번의 당혹감을 마주해야 했다.
선배가 기념일을 맞아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하나 했던지 그에 대한 인증샷을 SNS에 올라왔더랬다.
사진 속 그녀는 작은 리본이 달린 빨간색 플랫 슈즈를 신고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하이힐을 고집했고, 플랫은 지루한 애들이나 신는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납작한 빨간 에나멜 구두를 신은 그녀에게선 성숙미와 고급스러움이 뿜어져 나오고 있지 않은가.
패배감 같은 것이 저 밑에서부터 밀려오고 울적해진 나는
“그깟 신발 나도 사고 말겠다”라는 생각에 곧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그 슈즈를 찾아 헤맸다.
그 정체는 바로 레페토 레드 산드리옹.
슈즈를 알아냈다는 기쁨도 잠시 그 옆에 쓰인 가격이… 아쉽지만, 일차 후퇴.
이후에도 나와 레페토와의 만남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이미 대기하고 있던 쇼핑 리스트가 많기도 했고
부모님께 돈을 타 쓰는 형편에 삼십만 원을 훌쩍 넘는 신발을 산다는 것은 가당치 않았기에.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아, 레페토를 사야겠다'라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나긴 취준 생활을 견뎌내고 정사원 첫 월급을 받고서야 드디어
나는 나에게 '제1호' 레페토 슈즈를 선물했다.
편하고 예쁜 나의 지지, 블랙 35사이즈
오랜 숙원 사업이 드디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이쯤에서 나는 알아야겠다.
도대체 레페토는 어떤 브랜드이길래
이 브랜드가 사람의 무엇을 건드리길래
첫눈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애슬래저 브랜드
누구에게 교육받은 적도 없지만, 발레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아하고 고귀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발레에 대해서는 ‘뭔가 있어보여!!!’ 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우연히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을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우와...’ 할 만큼 그들은 우아했다.
바로 그 포인트가 레페토에 빠지게 되는 핵심이 아니었을까. 발레가 주는 이미지에 매료되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발레리나에 대한 판티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레페토의 부드러운 곡선과 신발 앞 코에 붙어있는 작은 리본을 보자마자 마구 설레는 마음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레페토 브랜드에 발레는 단순한 콘셉트가 아닌 브랜드를 지탱하는 정체성으로 여겨진다. 레페토는 1947년 파리의 마담 ‘로즈 레페토’는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아들 ‘롤랑 프티’를 위해 토슈즈를 직접 제작하며 브랜드를 론칭하게 되었다. 이 엄마표 무용화는 무용수들이 토슈즈를 신고 춤을 추면서 발이 아프지 않도록 가벼운 염소 가죽을 사용하고, 밑창에 박음질을 한 뒤 뒤집어버리는 이른바 스티치 앤드 리턴(Stitch and Return) 기법을 최초로 사용하며 무용수들에게 차원 높은 토슈즈를 제공하며 알려지게 된다. 이후 레페토 브랜드는 창립 5년 만인 1952년에 처음으로 캠페인 광고를 제작했고, 날개 달린 토슈즈와 아름다운 동작의 발레리나들을 키 비주얼로 '무용수를 위한 브랜드'라는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하고자 했다.
#. 발레라는 DNA가 주입된 패션화
레페토의 슈즈를 신고 우아하고 자유롭게 춤을 추는 발레리나를 본 여성들은 무대가 아닌 자신의 생활에서 이 토슈즈를 신고 싶어 했다. 발레리나 출신의 유명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무용화에서 패션 슈즈로 제품군을 확장하는 데 징검다리가 되었는데, 자갈로 포장된 길에서도 신을 수 있는 발레 슈즈를 만들어달라는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여 로즈 레페토가 만든 신발이 바로 현재 레페토의 아이콘인 ‘산드리옹’이다.
사람들은 레페토가 드디어 패션 슈즈를 만들어 냈다며 그 새로움에 열광했지만 로즈 레페토는 산드리옹을 토슈즈의 연장으로 보았다. 발레리나들은 고된 공연 일정을 마치고 나면 일반인의 발에 맞춰진 일상화를 바로 신지 못하고 발을 달래주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힘든 과정을 덜어주기 위한 게 산드리옹이라는 것이다.
결국 레페토는 기존 무용수 고객을 잃지 않으면서도 패션 슈즈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고, 이는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는 뿌리가 됐다.
산드리옹의 성공 이후 로즈 레페토는 가장 사랑하는 무용수이자, 자신의 며느리인 ‘지지 장메르’를 위해서도 슈즈를 디자인한다. 이름하여 시어머니표 슈즈 ‘지지’. 지지는 숏 컷의 관능적이면서 쾌활한 분위기를 갖춘 장메르의 스타일을 그대로 담았기에 중성적인 슈즈로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까지 사랑을 받았다.
이후에도 레페토는 패션성을 강화하며 슈즈 카테고리를 더욱 확장해 갔는데 그때에도 ‘춤’이라는 뿌리는 잃지 않았다. 로퍼 스타일의 ‘마이클’은 전설이 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살아생전 즐겨 신었던 검은 로퍼를 재해석하여 출시했고, 그의 이름에서 따와 ‘마이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모든 여성이 춤과 레페토를 통해 더 즐거워지기를
로즈 레페토의 사망 이후 사업을 물려받은 현재 레페토의 CEO 장마르크 고셰(Jean-Marc Gaucher)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다.
“레페토는 철저한 전통 무용 브랜드이며,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심지어 신발을 제작하는 기법까지도 무용에서 발전했다.
무용과 관련 없는 것엔 일체 관심이 없다.”
춤의, 춤에 의한, 춤을 위한 레페토는 광고 캠페인에서도 그 메시지를 이어 나간다. 레페토의 매 시즌별 필름에 등장하는 스토리 플로우는 동일하다. 여성들이 마주하는 일상의 상황이 그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그에 대한 대처, 감정의 표현, 극복을 춤과 레페토로 이뤄낸다. 처음 방문하는 카페에서 낯선 메뉴들을 보며 당황했을 때도, 권태로운 결혼생활에 지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때에도 레페토는 여성들이 춤과 레페토를 통해 극복해 나가길 바란다.
레페토 코리아에서는 대대적인 광고 집행은 하지 않고, 매해 꾸준히 컨셉화보를 찍고 있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건 <Ballerina in You>라는 콘셉트의 화보다. 레페토 파리에 비해 훨씬 무겁고 차분한 톤앤 매너로 촬영되었다. 프랑스에서 수입 후 리셀링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더 많이 팔릴 수 있도록 통통 튀는 대중적인 마케팅을 할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더욱 정통의 발레 장면을 사용한다는 것이 내게는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단적이지만 세 개의 챕터에 걸쳐 정통 무용에 대한 레페토의 진정성을 알고 나니
뜬금없이도 얼떨떨한 기분이 든다.
신발장에 아무렇게나 박혀 있는 나의 레페토 1, 2, 3호들이
이렇게나 뼈대 굵은 집 자식인 줄은 전혀 몰라봤다니.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도 레페토의 이 히스토리를 알기 전처럼 가볍게 여기려 한다.
제품 하나하나에 무용수의 발까지 편하게 하겠다는 브랜드 철학이 뒷받침되어 있기에
‘그저 편해서 구입했다’고 말해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테니까.
글. Creative Working 권혜연 플래너
'CONTENTS > Insi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댓글의 무게 (0) | 2019.12.12 |
---|---|
기적을 이야기 하다. LA MER (0) | 2019.12.11 |
2030은 왜 딩크를 택하는가 (0) | 2019.11.11 |
공항, 그 이상을 꿈꾸는 공항. CHANGI Airport Singapore (0) | 2019.10.11 |
여러분은 어떤 유튜브 세상에 빠져 있나요? (1) | 2019.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