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나 이 신발 사고 싶어.
지금.
”
결혼 이후로 쇼핑은 오롯이 아내의 영역이었던 터라,
평소 패션이나 소비와는 담을 쌓고 살던 나의 선언에 그녀는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동그래진 두 눈에 내가 더 당황할 정도로.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종종 패션, 음악, 스포츠, 영화 등다양한 형태의 소비 대상을 우연히 마주치고
종내 그것이 내 일상 혹은 취향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내게는 ‘올버즈 allbirds’가 그랬다.
늘 입던 것만 다시 꺼내 입고, 보다 못한 아내가 새로 사주는 옷과 신발 덕에 덥고 추운 계절들을 넘기기를 수 년째.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던 주말, 습관적으로 뉴스 어플을 켰을 때 무언가 거창한 단어들이 길게 나열된 기사 제목이 내 눈을 끌었다.
- "실리콘밸리’와 ‘헐리우드’의 ‘핫 아이템’이자 '울'로 만들어 ‘지속 가능한’ 운동화가 한국에 진출했다."
본문은 한술 더 뜬다.
- "'세계에서 가장 편한 신발’, ‘운동화계의 애플’, ‘실리콘밸리의 유니폼’, ‘디카프리오가 투자한 운동화’ "
이쯤 되면 궁금해서라도 검색창에 ‘올버즈’ 세 글자를 입력해보지 않을 수 없다. 화려한 수식어들을 보고 나와 같은 호기심을 느끼실 분들을 위해, 짧은 소개 글로 그 수고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한다.
진짜 ‘지속 가능’ 하다는 것의 의미 역시나 패션 무지렁이답게, 내 첫 검색의 목적은 신발의 디자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왜 이 브랜드에 ( 다분히 내 기준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가 투자를 했고, 유명인들의 투자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유독 레오나르도와 브랜드를 연관 짓는 이유가 가장 궁금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2016 오스카 수상소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모든배우들이 원하는 그 빛나는 영광의 순간에 르도 형은 이렇게 말했다.
/
“저희 영화 제작팀은 눈을 찾기 위해 지구의 남쪽 끝까지 내려가야 했습니다.
기후 변화는 실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심각한 현상이고, 힘을 합쳐 더 이상은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략)
..
우리 모두 지구를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
올버즈는 지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브랜드다. 올버즈의 모든 제품은 자연 소재, 혹은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진다. 신발 외부는 유칼립투스 나무 섬유, 안감은 천연 양모, 밑창은 사탕수수, 신발끈은 100% 재활용 플라스틱, 포장재는 재활용 골판지로 제작된다. 실제로 제작과정에서의 탄소배출량을 타 브랜드의 평균 60% 수준까지 줄였고, 심지어 생산 과정 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폐기되는 과정까지 고려한 탄소배출의 제로화를 브랜드의 핵심 목표로 삼고있다.
제품 디자인이나 라인업을 다양화하기 보다 끊임없이 지속가능한 소재를 개발하는데 주력하는 올버즈의 열정은, 이들이 흔히 보이는 친환경 브랜드 이상의 무언가라는 인상을 준다. 평소 환경 보호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이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그레타 툰베리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신발이라는 것 앞서 언급된 재료들만 보면 마치 정글 속 원주민들이 신고 다닐 것 같은 디자인의 신발이 상상된다. 신발 기능을 제대로 하긴 할까 싶다. 그러나 단순히 친환경 소재들로 만든게 전부라면, 환경에 큰 관심 없는 소비자들의 선택까지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올버즈의 또 다른 수식어 중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신발’이다. 말 그대로 그 본연의 기능에도 지극히 충실하다.
볼이 넓은 평발의 보유자인 나는 유명 브랜드에서 편하다고 소문난 운동화를 사더라도, 항상 내 발에 맞게 소위 '길들이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말이 길들이는 것이지, 사실상 불편함을 참아내는 것에 지나지 않던 그 기간 동안 내 발가락, 복숭아뼈, 뒤꿈치 중 한 곳은 꼭 까졌고, 더러는 물집이나 굳은살이 남기도 했다. 물론 신발을 맨발로 신는다는 건 상상도 못했고.
그래서인지 나는 올버즈를 처음 신었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특히 맨발로 신었을 때의 착화감은 기존의 신발들과는 결이 다르다. 물론 계절이나 취향에 따라 양말과 신어도 되지만, 발을 넣는 순간 부드러운 유칼립투스 섬유가 발등을 감싸고, 발바닥을 지지하는 양모는 마치 수면양말을 신고 있는 듯한 편안함을 준다. 실제로 지난 몇 달간 애착 신발 수준으로 거의 매일 신었음에도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올버즈는 구매 후 불만족 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적인 환불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이 신발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굳이 이 편안함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앞서 기사에 언급된 실리콘밸리와 헐리우드를 비롯한 유명인들이 이 신발을 신는 이유도 생각 외로 단순하다.
/
“너무 편해서”
/
Step 1. 우선 재생 가능한 소재를 개발한다.
Step 2. 그 소재로 정말 편한 신발을 만든다.
내가 느끼는 올버즈는 굉장히 명료한 브랜드다. 브랜드의 지향점을 모호하고 복잡하게 설명하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철학과 장점이 명료하다는 점 또한 내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제 운동화를 살 때, 과연 꾸준히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브랜드인지, 괜히 샀다가 불편해서 제대로 못써보는 건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운동화가 필요하면 그냥 올버즈를 사면 된다’는 결론과 함께, 앞으로 살면서 지겹게 반복해야 했을 인생의 작은 고민의 한 부분이 명확하게 밝혀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쉽게도 가격대가 그리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심플하고 명쾌한 인생을 위해, 아내와 새로운 협상을 시도할 예정이다.
“
여보,
여기서 이제
티셔츠랑 양말도
판다던데!?
”
글. CV5팀 임채덕 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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