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리를 다져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완력부터 부린다는 의미인데,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법의식을 담아낸 일종의 속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정이 복잡하고 오래 걸리며 당장 자신에게서 멀게 느껴지는 법률보다는 당장에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물리적인 힘을 쓰는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담아낸 표현입니다.
진부한 문장으로 먼저 언급한 이유는 당연히 광고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 입니다.
광고를 만들 때 우리는 '레토릭'이라는 미명 하에 '주먹'이라는 즉각적이고 실감나는 방법보다는 '법'이라는 이치에는 맞지만 복잡하고 멀게 느껴지는 방법을 더 쉽게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제부터 살펴볼 크리에이티브들은 법보다 가까운 주먹을 들이밀어 사람들에게 보다 강력한 이해와 즉각적인 체감을 제공한 것들입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세상은 재앙이지만, 광고 세상에서는 주먹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Fundacion Favaloro (아르헨티나 의료재단) - 볼 수 있는 소금 (The Salt You Can See)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성인의 소금 섭취 권장량은 하루에 5g 미만입니다. 과다한 나트륨 섭취는 고혈압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매일 15g 정도의 소금을 섭취한다고 하는데요. 아르헨티나의 의료재단 Fundación Favaloro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소금을 섭취하는 이유는 우리가 소금을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들은 세계 나트륨 경고 주간(The world salt awareness week)을 맞아, '볼 수 있는 소금'을 만들었습니다.
'볼 수 있는 소금'이란 기존의 하얀색 소금에 파스텔 컬러를 첨부하여 음식에 소금을 뿌릴 때 자신이 얼마나 소금을 섭취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소금입니다. 흰색 소금을 음식에 뿌리면 곧 음식에 스며들어 그 양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색을 첨부한 이 소금을 뿌리면 뿌린 소금의 양을 쉽게 알 수 있죠. 세계 나트륨 경고 주간 동안 사람들은 재단에서 무료로 임상 검사를 받고 이 소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재단은 이 소금을 슈퍼마켓, 레스토랑, 공공장소 등에서도 무료로 배포하며 캠페인을 홍보했습니다.
이 캠페인은 라디오와 TV를 통해 1800만 명 이상에게 도달되었고,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1600만여 명의 대중에게 노출되었습니다. 특히 페이스북에서는 이틀 만에 92만 명이 넘는 사용자에게 노출되었죠. 인스타그램에서는 100명이 넘는 유명 연예인들이 '볼 수 있는 소금'과 함께 찍은 셀카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아르헨티나의 스타, 세계 제일의 축구 선수로 꼽히는 메시까지 이 캠페인에 대해 알렸습니다. 또한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큰 소금 회사가 '볼 수 있는 소금'을 판매하기를 원했고 재단의 자금 마련을 돕기도 했습니다. ‘소금은 흰색’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여 과다한 나트륨 섭취를 주의하자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 캠페인이었습니다.
▲ Grey Argentina - The Salt You Can See (Fundación Favaloro)
많은 사람들이 위험한 줄 알면서도 급하다는 이유로 무단횡단을 합니다. 유럽의 경우 5m 내외의 짧은 횡단보도가 많아 ‘금방 건너고 말지’ 하며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까닭에 유럽 최대의 도심지 중 하나인 파리의 연간 시내 교통사고 사상자는 4,500명이라고 하는데요. 프랑스 도로안전국은 무단횡단의 위험성을 보행자가 몸소 경험할 수 있도록 옥외 광고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한 여자가 빨간 불임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킥 보드를 타며 무단횡단을 합니다. 여자가 길을 건너기 시작하자 차량이 급정거할 때 나는 브레이크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죠. 여자는 혼비백산하며 주변을 둘러보지만 차량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여자가 길을 마저 건너고 신호등 옆 옥외 간판에 자신의 얼굴이 그려져 있음을 발견하는데요. 간판에 급정거 소음이 울렸을 때 지었던 자신의 놀란 표정과 함께 ‘죽을 위기를 굳이 만들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군요.
매해 정부나 공익단체의 노력에 불구하고 교통사고 사망률은 높아만 지는데요. 교통사고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시민들의 안전불감증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도로안전국은 시민들이 무단횡단의 위험성을 직접 경험하게 해 안전불감증을 줄이고자 했는데요.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공포를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방어 의지를 만들어 나중에 비슷한 상황을 피하도록 노력한다고 하네요. 프랑스 도로안전국은 말로만 캠페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옥외 광고에 시민들이 높은 체감도를 구현할 수 있도록 크리에이티브에 기술을 입혔는데요. 길을 건너고자 할 때 사람을 인식할 수 있는 사물인식 기능, 실시간 사진 업로드 기능 등을 사용해 생생한 체험을 통해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 The virtual crash billboard
가구 소비자들은 제품 구입하기에 앞서, 먼저 실물을 보고 사용해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파리에서 오프라인 스토어를 여는 것은 비용 부담이 큰 탓에 쉽지 않죠. 프랑스 온라인 가구 브랜드 델라메종(Delamaison)은 집세를 내지 않고도 오프라인 스토어를 여러 지점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데요. 바로 매매하는 집을 임시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로 활용한 것입니다.
매매하는 집 집을 매도하는 집주인은 델라메종에 Apartment Stores 프로그램을 신청합니다. 원하는 날짜에 델라메종 스타일리스가 다양한 가구와 함께 도착하는데요. 매매하는 집의 인테리어를 리디자인하고 프로 사진작가의 도움으로 사진촬영을 합니다. 집 매도인에게는 맞춤형 프로모션 키트가 주어지는데요. 포스터, 리플렛, 온라인 배너 등에 사진작가가 촬영한 사진을 실어 인근 가게나 부동산 웹사이트에 홍보할 수 있죠. 홍보물을 보고 집을 방문한 소비자는 마음껏 둘러본 후, 델라메종 가구를 구입하거나 집을 계약하거나 혹은 집과 가구를 함께 계약할 수 있습니다.
델라메종은 업계 1위를 달리는 프랑스 온라인 가구 브랜드이자 인테리어 업체인데요. 제품에 대한 높은 관심에 비해 판매율은 미미합니다. 대다수 가구 소비자들이 온라인 주문보다 한번이라도 가구를 실제로 보고 사용해본 후 구입하기를 선호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집세가 높은 파리에서 오프라인 스토어를 여는 것은 쉽지 않은데요. 특히 경쟁률이 센 파리에서는 오프라인 스토어가 많을수록 유리합니다.
Apartment Stores는 집세 부담 없이 무한대로 오프라인 가게를 열 수 있는 방법인데요. 집 매도인이 매매할 목적으로 내놓는 집을 오프라인 스토어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 대가로 델라메종은 홈 스타일링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죠. 델라메종은 소비자에게 제품을 실물로 선보일 공간이 생기는 것이고, 집 매도인은 집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인테리어한 덕에 판매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띠로 비용을 지불할 필요 없이 델라메종의 가구 판매율은 전년 대비 20%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Apartment Stores는 2017 칸 라이언즈(Cannes Lions)에서 은상 2개와 동상2개를 받으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캠페인을 기획한 ECD 엘리 트로티농(Elie Trotignon)은 “잘 꾸며진 집일수록 더 빨리 판매된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에게 도움을 준 집주인들에게 우리도 그만큼 도움이 된 캠페인”이라며 긍정적 평가를 했습니다.
▲ Delamaison - Apartment Stores
프랑스의 자동차 브랜드 르노(Renault)는 어린 아이들에게 교통안전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불행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가상의 상황을 예로 들어 가르치기 때문에 아이들은 배운 내용을 현실 상황에 쉽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르노는 아이들에게 교통안전을 현실에 대입해 가르치고, 아이들이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동네지도를 매트로 제작했습니다.
르노가 개발한 Doodle Mat 웹 사이트에 접속하면 보기로 Toon Ville, Doodle Map, FeliCity, 3가지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이 주어지는데요. 그 중 하나를 선택한 후, 자신의 집 주소를 입력합니다. 그러면 웹사이트의 특수 알고리즘으로 구글 맵에서 입력된 주소지를 찾아 선택했던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로 지도를 자동 변환합니다. 그리고 지도를 매트에 인쇄해서 집으로 배송이 하죠.
동네 지도가 그려진 매트를 바닥에 깔고 보호자는 아이에게 동네에서 주의해야 할 도로안전과 꼭 지켜야 할 안전 수칙들을 알려줍니다. 반면, 아이는 알록달록하게 그려진 동네 지도를 보며 마치 놀이처럼 안전에 대해 즐겁게 배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외출할 때 언제나 사고를 당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특히 아이 몸집에 비해 크고 무거운 자동차에 치이면 중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교통사고를 더더욱 조심해야 하죠. 그래서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보호자에게 도로 안전에 대한 교육을 받는데요.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손을 번쩍 들기, 횡단보도에서 뛰지 않기, 차도에 올라가지 않기, 항상 좌우를 살피기 등 조심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이 많죠.
하지만 아이들은 배운 내용을 실전에서 실천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신호등이 빨간 불일 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묻는 등 가상으로 상황을 가정해서 주의사항과 수칙들을 배운 탓에 현실 상황에 대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인데요. 르노의 Doodle Mat는 아이들이 실전에서도 잊지 않고 안전에 유의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익숙한 동네 풍경을 보며 각 골목과 횡단보도에서 조심할 부분을 알려주면 아이는 빠르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 골목이나 횡단보도에 섰을 때 보다 쉽게 배운 내용을 떠올릴 수 있죠. 뿐만 아니라, 인형과 장난감들로 더 실감나는 상황을 연출하면 아이는 더 즐겁게 몰입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 Renault - Doodle Mats
글. 채용준 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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