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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Story

[오, 나의 콘텐츠 #2] 알고리즘을 지배한 털 뭉치

글|Tillion팀 박현우

 

처음 그 작은 생명체를 만났을 때, 나는 그저 작고 약한 동물을 돕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아내와 함께 도착한 동물보호소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털 뭉치들로 가득했다. 안락사라는 극단적인 선택지를 앞두고 마지막 입양을 기다리는 그들의 사연이 철장마다 적혀 있었다.

 

털 알레르기로 인해서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동반자가 반대해서

유독 한 명에게 입질이 심해서

 

그중 눈에 들어온 털 뭉치. 회색 결의 털을 가진 고양이. 금방이라도 감길 것 같은 생기 없는 눈동자. 끈적하게 엉겨 붙은 털. 미세하게 떨리는 작은 몸. 느릿하고 어색한 움직임.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일어난 감정은 측은지심이었다. “얘야, 잠깐만 기다려. 이 철장에서 나가자. 나와 가족이 되자.”

 

그를 집으로 데려와 모모라는 새 이름을 붙여준 날, 나는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고양이 키우는 법’, ‘고양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쳤다. 온갖 고양이 관련 유튜브 채널도 구독했다. 그렇게 털 뭉치는 나의 알고리즘을 지배했다. 여러 (랜선) 전문가와 함께 예쁜 밥그릇을 사고, 편안한 화장실을 사고, 재밌는 장난감을 샀다. 그사이 조금씩 커지는 건 모모뿐만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내 책임감이 부풀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색했다. 내 손을 할퀴었을 때는 아팠고, 밤새 이유 없이 울어댈 때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 갑자기 다가와 머리를 부딪칠 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할퀴는 것은 놀이의 일종이었고, 울음은 관심을 끌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었다.

 

유독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서던 어느 날, 현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모모와 마주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내가 보살펴야 했던 약한 유기묘는, 내 일상을 함께하는 반려묘가 됐다.

 

나는 점점 모모의 행동을 읽을 수 있게 됐다. 꼬리의 움직임, 귀의 각도, 눈빛의 변화…. 모든 것이 나에게 의미로 다가왔다. 나 역시 그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갔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사랑을 표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중저음보다는 하이톤을 긍정적인 언어로 인식하는 모모에게, 나는 늘 방정맞은(?) 반려인이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이 작은 생명체에 동화되어 갔다. 모모의 존재가 내 알고리즘을 넘어 내 삶 전체에 녹아들었고, 나의 일상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힘든 하루 끝에 집에 돌아와 모모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위로를 받았고, 주말엔 그와 함께 늘어지게 낮잠을 자며 행복을 느꼈다. 물론 잠결에 실수로라도 건들면 그 즉시 솜방망이로 응징당하는 경험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되고 있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초보 집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저 반려묘와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처음 가졌던 측은지심은 이제 깊은 애정과 이해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여정을 통해 나는 책임감과 인내,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해 배웠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더 참을성 있고, 더 이해심 많고, 더 따뜻한 사람으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작은 털 뭉치, 모모였다. 이제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내가 그를 구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구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털 뭉치도 함께한다. 조이야, 우리 가족이 된 걸 환영해!

 

▲현우 님의 반려묘 조이(왼쪽), 모모(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