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연기자매니지먼트팀 조자룡
어릴 때부터 친구들은 나를 조맨이라고 불렀다. 성(姓)인 ‘조(Jo)’에 ‘맨(Man)’을 붙인 별명이었다. 남자라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어떤 자리에도 빠지지 않고 놀기 좋아하는 성향을 담은 별명이기도 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조맨이다. 근데 이제 매니저(Manager)를 곁들인…. 이것은 조맨(Jo-Man)이 조맨(Jo-Manager)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조맨은 태생적으로(?) 모든 예술적인 활동을 좋아했다. 그림을 사랑해 화가를 꿈꾸던 날도, 음악을 사랑해 노래방에서 살던 날도 있었다. 시간을 내어 전시회를 가고 영감을 얻는 일도 좋아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영화였다. 조맨의 인생은 <말죽거리 잔혹사>로 시작해 <행복을 찾아서>를 걸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엔터테이너라고 여겼다.
관심사가 많았던 고등학생 시절의 조맨은 불현듯 사업가가 돼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2년제 대학교 경영과에 진학했다. 경영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재미없는 공부구나, 깨달을 무렵이던 1학년 말에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학교가 4년제로 통폐합된다는 것이었다. 군대를 다녀오면 자동 특례 편입이 가능하다기에 부랴부랴 입대를 감행했다.
약 2년 뒤. 제대한 조맨에게 또 다른 재미있는 소식이 들려왔다. 4년제 통폐합 영향으로 재학생들에게 전공 변경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맨은 공연예술학과에 다시 입학하게 됐다. K-POP과 연기 중 세부 전공을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는 고민 없이 연기를 선택했다. 그때까지도 영화는 조맨의 역사였으니까.
남들은 재수에 삼수, 수시에 정시에 학원까지 다니며 도전하는 연기였다. 영화가 좋다는 이유로 덥석 도전하기에는…
너무 재미있잖아!
실력을 차치하더라도 연기를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도파민이었다. 호흡 공부, 발성 훈련, 신체 훈련, 뮤지컬 수업, 제작 실습…. 조맨은 태어나 처음 배우는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재야의 엔터테이너가 세상 밖으로 나설 준비를 하는 느낌이랄까.
F 학점만 면하자고 생각했던 공연예술학과 생활은, 무려 한 번의 차석, 두 번의 차차석이라는 훌륭한 성과로 마무리됐다. 그 끝엔 TV나 영화에 출연하는 조맨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조맨이 배우 매니지먼트를 하게 된 것은,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어느 날, 조맨은 진정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첫 번째는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지내며 배운 운전이었다. 학과 특성상 규칙적인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어 3년간 대리기사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도 도움이 됐다. 코너링이 예술인 안정적인 운전 실력, 웬만한 서울 및 경기권 지리는 꿰뚫고 있는 인간 내비게이션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두 번째는 어릴 때부터 조맨으로 통할 수 있었던 사교성이었다.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고 그걸 낙이라고 생각해 왔다. 여기에 세밀한 성격과 뭐든 덤비고 버티는 지구력은 덤이었다.
그렇게 조맨은, SM C&C 연기자매니지먼트팀 조맨이 됐다.
영화를, 배우를, 연기를 동경하던 그는 촬영 현장에서 (마음으로) 울었다. 존경의 눈물이었다. 소름 끼치게 섬세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매니저로 전향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연기를 업으로 삼고 있지 않더라도 그들의 연기는 그 자체로 조맨의 인생에 좋은 자극이 됐다.
어느 날은 신인 배우들이 현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참을 헤맸다. 스태프들은 수군거렸다. 하지만 조맨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어려울지, 또 얼마나 절실할지. 그래서 그저 따뜻하게 웃었다. 연기 전공자인 매니저가 할 수 있는 작은 위로였다.
최근 배우 방민아와 원팀이 됐다. 그녀가 SM C&C와 전속계약을 체결하며 ‘조맨의 배우(?)’가 된 것이다. 배우가 제일 좋은 환경에서 최고의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발바닥에 땀 나도록 달려야지. 그렇게 새로운 활력을, 새로운 콘텐츠를 세상에 내보여야지.
누군가는 매니저를 두고 ‘운전기사’, ‘극성팬과 언성을 높이는 사람’, ‘보디가드’라고 생각한다. 직접 해본 이 일은 생각 이상으로 어렵고 힘들었다. 회사와 아티스트 중간에서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하고, 그러지 못한 경우 회사와 아티스트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책임감이 커지는 만큼 보람차고 설레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쩌면 음악이나 영화보다 더 재밌는 일이기도 했다. 관계의 중요성을, 업무 정확도의 중요성을 매일 깨닫고 배운다. 사실은 아직도 많이 깨지며 성장하는 중이고.
이 자리를 빌려 조맨으로 살게 하는 SM C&C 우성진 센터장님과 이준용 팀장님, 그리고 지금도 현장에서 더위&추위와 싸우는 동료들과 소속 배우들께 감사 인사를 남긴다.
'CULTURE >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 나의 콘텐츠 #4] 예비 아빠의 성장기 (0) | 2024.12.04 |
---|---|
[오, 나의 콘텐츠 #2] 알고리즘을 지배한 털 뭉치 (2) | 2024.10.02 |
[오, 나의 콘텐츠 #1] 이모는 뭐가 됐냐면... (0) | 2024.09.02 |
[CD Recipe] 웅크+좋아서+MAKERS+BOB=포레스트 (0) | 2020.11.23 |
[CD Recipe] 중원에서 살아남기 (0) | 2020.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