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총무팀 김종남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꽤 여러 번 사회적 신분이 바뀌어 왔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이 그러하듯 학생이었고, 군인이었고, 다시 학생이었다. 현재는 직장인으로 8년째 살아가고 있다.
2년 전 새로운 신분이 주어졌다. 부모님의 자식이기만 하던 내가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고, 또 다른 부모님의 사위가 되었다. 그리고 내년 3월엔 한 아이의 아빠라는 새로운 직책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결혼 못지않게 복잡하고 많은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아직도 준비할 게 한참 남았지만) 산후조리원을 예약했고, 아기용품을 구매했다. 매일 신생아 육아 정보를 공부하고, 매월 1~2회 병원에 방문한다.
부부가 공동으로 준비해야 하는 사항 외에 개인적인 숙제도 있었다. 바로 운전. ‘때가 되면 하겠지?’라며 막연하게 생각해 왔는데, 그 ‘때’가 온 것이다.
운전을 시작하고 자동차에 관심을 두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영 관심이 없었다. 긴급할 땐 택시를 부르면 되고, 급하지 않은 경우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으니까. 운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차를 빌리고 장인어른에게 운전 연수를 받으면서도 ‘운전을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최근에 생각을 바꾸게 된 사건이 있었다. 바로 117년 만의 11월 폭설.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눈을 직접 밟은 건 처음이었다. 거주지 특성상 제설 작업이 더뎌 버스는 물론 택시도 한 대 다니질 못했다. 하필 그날 아내와 병원에 가야 했다. 폭설로 인한 사고 현장 사진이 아파트 단체 채팅방에 실시간으로 도배됐다. 도로 위 차들은 초록 불에도 좀처럼 움직이질 못했다.
예비 아빠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진료 일정을 바꿔 다음에 방문하거나, 직접 운전을 해서 병원으로 가야 했다. 후자를 택한 난 난생처음 눈길 운전을 하게 됐다. 신호등 앞에 정차해 있다가 다시 출발할 때 바퀴가 헛돌며 차 머리가 우측으로 획 꺾였다. 차엔 아내가, 아내 뱃속엔 보물이가 있었다. 주변에 차가 없어 사고가 나진 않았지만 처음 겪는 상황에 식은땀이 폭설처럼 내렸다.
혼미한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을 복기하다 의외로 마음이 단단해졌다. ‘아내의 출산이 임박한 상황이거나, 가족이 아픈 상황에서 내가 다리가 되어야 한다.’
큰 숙제라고 생각했던 운전은, 아빠가 되는 숱한 과정 중에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곧 태어날 보물이를 위해 내가 노력해야 할 일이 아주 많을 것이다. 가령, 약한 비위를 참고 기저귀를 갈아준다거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귀찮아하지 않고 좋은 답변을 해줘야 할 것이며, 사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을 시켜 주기 위해 55세까지는 돈을 벌어야 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이 아빠가 할 일임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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