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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Story

[오, 나의 콘텐츠 #8] 어? 나의 '세.바.시' 어! 나의 '사.타.점'

글|TAPI 김나리 카피라이터

 

운명을 알아내고야 말겠다고 쓴 돈이 족히 60만 원은 되는 것 같다.

 

점집마다 시세가 다르지만 보통 복비가 5~10만 원 정도였고, 내가 한참 점에 빠져 있을 때는 평균가 5만원으로 측정되었던 시절이었기에 그나마 60만 원에 그칠 수 있었다.

 

취업 후 푼돈을 벌게 된 나는 언제쯤 '덜' 푼돈을 벌 수 있을지 궁금했다. 신점을 보고 싶었지만, 젊은 여자가 점쟁이를 찾아가면 귀신이 붙어온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처음엔 타로점으로 시작했다. 무작위로 뽑은 그림 카드에 내 운명을 알려 달라고 빌었다. 몇 개월 동안 수백 장을 뽑아 보았지만, 역시나… 타로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결국 본격적으로 신점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 막 산에서 수련을 마치고 내려와 신과 소통이 원할하다는 점쟁이도 찾아갔고, 세 명 이상만 모이면 출장을 온다는 점쟁이를 회사 근처로 모신 적도 있다. 점을 보러 다니기 전엔 점쟁이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기대했다. 쌀알을 뿌리거나, 귀가 아플 정도로 종을 흔들어 대거나 진한 보라색 아이섀도에 ‘갓’ 형태의 모자를 쓰거나, 머리를 단정하게 쪽진 모습일 것이라고.

 

그러나 내가 봤던 점쟁이 중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귀신이 붙어오기는커녕 오히려 ‘저렇게 댄디하고 말끔한 분들에게 귀신이 붙어있기나 할까?’ 싶었다. 도리어, 연이은 야근으로 엉망이 된 머리와 후줄근한 차림새를 한 내 비주얼이 더 점쟁이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지방의 유명한 점집이 궁금해졌다. 직접 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비효율적이었다. 다행히도 코로나 이후 점집들도 비대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전화 사주나 카톡 사주 같은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부산의 유명한 점집에 전화를 걸었다. 대한민국 톱스타들도 찾는다는 곳이라 긴장했지만, 예상과 달리 점쟁이는 상냥하고 웃음이 많은 아주머니였다. 과거부터 미래까지 꼼꼼하게 봐주셨고 단 한 가지도 맞지 않았다. 사실 대부분의 점괘가 과거의 사건이나 내 성향은 꽤 정확하게 짚었지만, 미래를 맞힌 이는 없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고, 아무리 유명하고 용하다고 해도 만사를 훤히 내다보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수험생처럼 전략적으로 스케줄링하며 점집을 찾아다니다, 결국 운명을 알아낼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후 무료 사주 앱을 다운로드해 가볍게 매일 운세만 체크하는 정도로 타협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내 운명이 간절했다. 고생을 덜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생의 여부를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처럼 엄마에게 점집을 찾아다녔던 과거를 고해성사했다. 엄마는 ‘그런 걸 믿어서 뭐 하냐?’ 하시며, 모든 건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마치 ‘어른’의 목소리처럼.

 

“헛돈 쓰지 말고, 하던 거나 잘하면 된다.”

 

물론 먼 훗날, 언젠가는 또 사주를 보러 다니게 될지 모른다. 유명한 곳을 찾아 예약하고 기다리고 좋은 때를 염원할 것이다. 이게 나의 '세. 바. 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같은 것이라면 가끔은 다녀봐도 좋겠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Feat. 그런데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엄마도 집에서 편도 두 시간이 걸리는 여수까지, 10년 넘게 사주를 보러 다녔다는 것. 역시 딸은 엄마를 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