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실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업무적인 일로 외주 업체와 미팅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고, 미팅의 시간은 한정적이다. 물론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당연히 어떤 사람인지 대략 파악이 가능하겠지만 회의 시간에 주로 말을 하는 사람은 키 맨 한 명뿐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말없이 노트에 메모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의 겉모습, 특히 그들이 지니고 있는 브랜드들을 단서로 삼아 그 사람들의 취향을 짐작해보려고 한다. 우리 일은 취향이 소양이 되는 일이니까.
그런데 유독 단서로 삼기 어려운 브랜드가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할 포터(PORTER)다. 포터를 들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한번에 단정 짓기가 어렵다. 가방의 본질에 충실한 기능성을 보자면 무척 실용적인 사람일 것 같은데, 포터 가방은 불과 3년 전까지는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레어템인데다가 가격도 저렴하지 않다. 그렇다면 자기가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갖고 마는 나름의 고집이 있는 사람인가? 그러기엔 디자인은 지나치게 심플하고 마크는 잘 찾아봐야 보일 정도로 작고 구석진 곳에 위치해서 ‘나’의 다름을 어필하기엔 너무 수수하다.
도대체 포터란 어떤 브랜드일까? 그 내면을 한번 들여다보자.
PORTER를 이해하기 위한 세가지 단서
단서 1.장인정신
포터를 이해하기 위한 3가지 단서가 중 첫 번째는 장인정신이다. 포터의 창립자인 요시다 키치조는 가방 장인을 꿈꾸며 1935년에 자신만의 가방 공방을 차린다. 당연히 가방 장인을 꿈꾸었으니 훌륭한 가방을 만들기 위해서 어마어마하게 애를 썼겠지만 특히나 키치조는 디자인보다는 가방의 쓰임새에 집중했다. 그 이유는 도쿄에서 겪은 대지진 때문이다. 그때 키치조는 집안의 여러 도구들에 끈을 묶어 밖으로 옮기면서 ‘가방이란 모름지기 물건을 담고 옮기는데 최적화된 도구’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본질에 충실한 가방을 만들며 이름을 얻어가던 요시다는 1962년,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가방 독자 브랜드를 설립하게 된다. 그때 설립한 브랜드 이름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PORTER’다.
그런데 왜 포터일까? 포터의 사전적 의미는 ‘짐꾼’이다. 앞서 소개했던 키치조의 모토를 생각하면 너무 자연스러운 의미이기도 하지만, 초창기의 로고를 보면 더 재미있는 의미가 숨어있다. 호텔에서 손님의 가방을 옮겨주는 짐꾼, 그 짐꾼을 캐릭터화해서 로고로 쓴 것이다. 왜 호텔의 짐꾼일까? 호텔 짐꾼은 세상의 모든 가방을 만져볼 것이고, 그들이라면 정말 좋은 가방을 알아볼 것이다. 그런 짐꾼들이 인정하는 좋은 가방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인 것이다. 이름을 더 있어보이게 지어볼 법도 한데 포터는 좋은 가방에 올 인하는 자신들의 철학답게 정말 이름도 본질에 충실해버렸다. 그 밖에도 자체 공장을 두지 않고 40개의 공방, 장인들과 협업으로 제품을 만드는 만듦새에 대한 고집 등등 장인정신에 대해 할 얘기가 많지만 지면 관계상 얼른 다음 단서로 넘어간다.
단서 2. 탱커
그런데 그냥 가방만 잘만들었다면 포터는 설명하기 쉬운 브랜드였을 것이다. 그런데 1983년에 발표한 탱커라는 제품을 기점으로 패션 아이템의 영역으로 ‘훅’ 들어가면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브랜드가 된다. 아마 포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제품도, 길거리에서 제일 많이 보게 될 제품도 탱커일 것이다. 그런데 탱커의 탄생은 포터답게 참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 기존의 무겁고 각진 가죽을 대신해서 나일론으로 가방을 만들면 더 가볍고 튼튼하며 수납이 용이한 가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만든 가방이 탱커다(나일론으로 가방을 만들었다는 사실에도 엄청난 장인정신이 숨어있지만 그건 생략한다).
미군 항공 점퍼 MA-1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이 가방의 특징은 수납에 집중한 디자인과 수수한 컬러의 겉감과 달리 화려한 오렌지색의 안감이 사용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이 탱커 시리즈는 물론 포터의 시그니처가 된다. 어쨌든 이 혁신적인 제품이 공존의 히트를 치면서 포터는 일본의 국민 가방으로 올라서게 된다. 특히나 90년대에는 스트릿 패션을 소개하는 잡지에서는 항상 빠지지 않는 힙한 아이템으로 자리잡게 된다. 자, 이쯤 되면 브랜드의 성장과 더불어 탱커 라인에 회사의 전력을 집중하고 대대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칠 법도 하건만… 포터는 그러지 않았다. 딱 정해진 수량만큼만 만들고, 기존에 하던 대로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에 맞춘 실용적인 가방을 더 만들었다. 그럼 어떻게 포터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을까?
단서 3. 콜라보레이션
대대적인 광고 마케팅을 펼치지도 않는데 어떻게 80년이 넘은 브랜드가 아직도 젊음을 유지하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펼치며 성장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답이자 포터를 이해하기 위한 마지막 단서는 콜라보레이션이다.
남들 다 하는 콜라보레이션 뭐가 특별하냐고 반문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요즘은 콜라보레이션을 안하는 브랜드를 찾기가 더 어려우니까. 그런데 포터의 콜라보레이션 역사를 보면 남달라보인다. 포터는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유명한 사업가, 편집샵, 연예인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왔다. 그리고 콜라보레이션한 제품들은 특정 매장에서만 구매하게 하여 그 가치를 높였다. 남들보다 빠르게 꾸준히 해왔던 콜라보레이션 중에 가장 돋보이는 콜라보레이션은 모노클 잡지와의 작업이었다. 이전까지 국민 가방, 어디서든 살 수 있는 가방에서 특별한 곳에서 살 수 있는 안목있는 잡지에게 인정받는 ‘있어보이는’ 브랜드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그 후로 포터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세상의 거의 모든 잘나가는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는데(심지어 콜라보레이션 한 제품만 모아놓은 매장이 따로 있다) 그 횟수와 규모를 보면 자연히 이런 의문이 든다. ‘도대체 저 많은 콜라보레이션을 어떻게 감당하지?’ 그런데 여기에 앞서 소개한 포터의 시작에 답이 있다. 마치 공방에서 외뢰인의 요청에 따라 가방을 제작하듯이 콜라보레이션 하는 브랜드의 의뢰에 맞춰 제품을 만들어주는 형태인 것이다. 이렇게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탄생한 제품들은 세계 곳곳의 콜라보레이션 한 브랜드들의 매장에서만 독점 판매됨으로서 자연스럽게 포터는 세계적인 인지도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몇 년 사이에는 마르니, 스톤아일랜드, 미쏘니, 오프 화이트, 펜디까지 하이엔드 브랜드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급을 높이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드러내지 않고 도드라지는 매력
포터의 디자인실 디렉터가 말하는 포터의 지향점은 모든 사람과 모든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것이 탱커라는 메가 히트 제품이 있을지언정 탱커에 올인하지 않고 매년 15개의 새로운 라인을 선보이는 이유이며, 거의 모든 브랜드와 기꺼이 콜라보레이션하는 이유다. 그리하여 포터는 혼을 담아 만든 좋은 가방이라는 분명한 모토로 시작하여 쓰임에 따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와 이미지가 달라지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포터만을 보고는 그것을 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수 없는 이유다. 모든 브랜드들이 강한 주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시대에 쓰임을 통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포터. 더 많은 이들이 더 다양한 이유로 포터를 들기를 바라며, 그리하여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기 바라며 마무리한다.
글. Black&Company 우동수 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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