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가는 많은 사람에게 미술관과 박물관은 매력적인 관광 스팟이다. 한 도시를 방문하는 목적에 문화유산이나 예술품 관람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20년 전 스페인의 빌바오라는 도시는 테러의 위협과 철광 산업 실패로 인해 도시 전체가 쇠락하고 있었다. 시는 이를 살리기 위해 문화에 투자하기로 결정하였고, 프랭크 게리 Frank Gehry가 건축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게 되면서 도시에 제 2 부흥기가 도래하였다.
우리는 ‘빌바오 효과 The Bilbao Effect’를 통해, 빌바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뿐 아니라, 예술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내 생각은 이렇다. 예술은 단지 그 자체의 심미적인 쾌락에서 시작하여, 그 시대를 반영하고 비추는 상까지 도달한다. 예술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고, 시대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요즘 파란색은 특별한 색으로 생각되지 않지만,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화가들에게 파란색 안료는 구하기가 어려워 아무 데나 허투루 사용할 수 없었다. 울트라마린으로 불리는 이 파란 안료는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나오는 라피스 라줄리라는 파란 보석을 가공하여 만들어졌다. 이 광석은 아라비아 상인을 거쳐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럽 상인들에게 건네지고, 배를 타고 베네치아와 같은 이탈리아 항구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같이 어려운 경로를 통해 얻은 파란색은 성모 마리아와 같은 특별한 인물의 옷에 사용되었고, 그림의 파란색은 당시 유럽의 무역 상황을 방증하고 있다.
이처럼 미술과 정치, 사회, 경제 여건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시대의 많은 요소를 반영한다. 18세기 후반 독일에서는 ‘시대정신’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고, 이는 한 시대를 지배하는 지적, 정치사회적 정신 경향을 지칭한다. 어떤 비평가들은 시대정신이 담겨있지 않은 예술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 작품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르네상스 시대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드로 다빈치와 같은 천재 미술가들이 존재했으며,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지금봐도 압도될 정도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2019년에 미켈란젤로와 같은 조각을 하면 어떻게 될까? 성경의 이야기를 담아 성당 천장화를 그리고, 성모 마리아를 조각하던 것이 르네상스 시대의 가치였다면, 지금 시대의 미술은 성경의 기록이나 종교의 위대함을 담을 필요가 없어졌다. 500년 전 미켈란젤로가 표현하던 것들이 현시대의 미술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지 않으므로, 천재 미술가의 타이틀은 얻을 수 없다. 지금의 예술은 지금의 예술 언어로, 동시대를 드러내야 의미가 있으며 힘이 생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컨템퍼러리 아트라고 부르는 현재의 예술은 무엇을 반영하고 있을까? 물론 한두 가지로 압축하여 설명할 수 없겠지만,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예술이 담고 있는 코드에 대해 살펴보겠다.
AES+F는 러시아의 작가 그룹으로 작가 성의 앞글자를 조합해 이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한 타티아나 아르자마소바(Tatiana Arzamasova), 레프 예브조비치(Lev Evzovich), 그래픽을 공부한 예브게니 스비야츠키(Evgeny Svyatsky) 세 명으로 결성되어 AES로 활동하던 이들은 패션 사진가 블라디미르 프리드케스(Vladimir Fridkes)가 뒤늦게 합류하며, AES+F로 명명하였다.
AES+F는 현시대의 논쟁적 이슈를 감각적이고 세련된 사진과 영상으로 보여준다. 그들이 보여주는 대형 스크린 속 이미지는 마치 광고의 한 장면처럼 완벽한 미장센을 갖추고 있다. 이들의 작품에는 적나라한 삼성 로고뿐 아니라, 인물들 의상의 나이키, 블루마린과 같은 상업 브랜드 로고가 그대로 노출된다. 구소련 시절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였지만, 20세기 초부터 부르주아들은 서구 체제를 지향해왔다. 사회주의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이었고, 자신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거란 믿음은 머지않아 깨지고 자본주의에 막연한 환상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의 자유화는 심각한 양극화를 초래하여, 빈곤층이 늘어나고 빈부 격차는 커졌다. 사회주의 시절 러시아가 가졌던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은 모두 깨져버렸다.
▲ (위) AES+F <트리말키오의 연회>, (아래) 러시아 아트 콜레티브 AES+F (이미지출처: AES+F Instagram, http://aesf.art)
AES+F의 <트리말키오의 연회>는 러시아의 이 같은 사회 현상을 작업에 반영한다. <트리말키오의 연회>는 고대 로마 소설 <사티리콘Satyricon>에 등장하는 이야기로, 본래 노예 출신이었으나 주인의 총애로 자유와 유산을 물려받은 억만장자 트리말키오가 흥청망청 연회를 베푸는 상황을 묘사한다. 이 소설은 서기 1세기의 로마를 배경으로 그 시대를 엿볼 수 있는데, 당시의 속물적이고 난잡한 만찬 분위기, 노예의 삶, 부정부패, 허영, 교육관 등이 대화에 등장한다.
AES+F는 가상의 휴양지 호텔을 만들어 <트리말키오의 연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앞서 언급했듯 거대한 광고처럼 보이는 이 이미지는 디지털로 구성되고 조작되어 새로운 서사를 드러낸다. 작품에는 사람들이 동경했던 신자유주의가 러시아에 어떤 영향을 초래했는지 은유적으로 담겨있다. 존재하지 않는 이국적 배경 속 다양한 인물들은 고급 리조트를 즐기는 삶을 보여주는데, 자세히 보면 이들 간에 부를 거머쥐고 즐기는 이들과 이들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사회주의나 자본주의가 부를 재분배 해주지 못했다는 작가의 시각이 드러나며, 빈부격차의 이슈를 인종문제와도 연결했다.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은 백인이며, 청소를 하고 정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유색인종으로 그 격차를 가늠케 한다.
예술은 원래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소수 엘리트의 특권과 같았다. 문맹이 많았고, 그림을 아무나 살 수 없었던 시절, 일반 대중들이 함께 즐기기엔 어려웠으며,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소양을 갖춰야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급예술과 거리가 먼 대중의 이미지들이 어느 순간 현대미술 작품에 등장하게 된다. 일례로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코카콜라는 대중적 취향의 음료수 병을 브랜드 로고를 전면에 노출하며 화면에 드러낸다. 워홀은 “대통령도, 세기의 여배우도 콜라는 그저 같은 콜라일 뿐, 아무리 큰돈을 준다 해도 더 좋은 코카콜라를 살 수 없다”고 말한다.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같은 콜라를 소비하는 것을 민주적 평등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AES+F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메타포들을 화면에 담아 보여준다. 작품 속 인물들은 귀족 스포츠로 대접받는 테니스와 골프를 즐기며, 의도적으로 대중적인 상업 브랜드 로고를 화면에 노출시켜 광고와 같은 인상을 준다.
AES+F의 행보는 실제 상업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연결되어 확장된다. 그들은 이미 작업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축된 가상 공간의 연출과 흠 없는 조명의 매끈한 사진, 이를 합성해 만들어진 영상과 사진으로 상업적 코드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AES+F의 광고 연출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최근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럭셔리 브랜드 펜디와 협업해 ‘젠틀 펜디’라는 이름의 새로운 컬렉션을 출시하였다. AES+F가 바로 이 컬렉션의 캠페인을 디렉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젠틀 펜디’의 협업 이슈보다, AES+F의 광고 연출에 먼저 관심이 끌렸다. 작가들은 어딘가에 있을법한 고전적 건축물의 이미지에, 형체를 가늠할 수 없는 오브제를 등장시켜 ‘젠틀 펜디’라는 브랜드에 초현실적이며 미래적인 느낌을 부여하였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AES+F의 기존 작업이 상업적 코드를 가지고 있었고, 자본주의가 가져온 문제점들에 비판적 시선을 가지면서도 그것을 강렬하고 화려한 표현으로 흡입력 있게 표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 (좌) 젠틀몬스터와 펜디의 콜라보레이션 #GentleFendi (우)#GentleFendi 옥외광고 (이미지출처: Gentlemonster Instagram)
AES+F 외에도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등 많은 현대미술가가 상업 브랜드와 협업을 하고 있다. 바바라 크루거는 AES+F처럼 상업적 디자이너의 경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극적 이미지 위에 이탤릭체 텍스트로 짧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작업하였다. 크루거는 예술가로 활동하며 대중과의 효과적 소통을 위해 기존 광고를 차용하고, 자본주의 사회와 제도, 지배구조를 지적했다.
대표적 작품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철학적 텍스트를,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패러디하였으며, 향후 런던 셀프리지 백화점 광고에 사용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크루거의 텍스트가 비록 자본주의 사회에 시니컬하게 던진 말이었더라도, 백화점 천장에 연속적으로 걸리게 되면서 오히려 쇼핑을 독려하는 메시지로 읽히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때 고급 예술로 취급되던 미술이 상업 광고에 쓰이며 오히려 기존 작품이 가진 힘과 메시지를 브랜드 이미지에 더해 시너지 작용을 일으켰다.
▲바바라 크루거와 런던 셀프리지 백화점 콜라보레이션 광고 <I Shop therefoew I am>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상의 가치는 금전적으로 매겨진다. 금액으로 평가할 수 없는 재화는 쓸모 없는 것으로 취급되지만, 세상엔 여전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특히 예술 작품은 그 가치가 가격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도시를 살려내는 힘이 있을 수도 있으며, 지불한 금액에 비해 형편없는 가격이 책정되어 되팔 수 없는 작품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업 브랜드에서는 현대미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동시대의 언어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지, 세상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그 맥락을 살펴보다 보면, 작품에 담긴 의미를 발견하고 브랜드와 현대미술이 동시에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예술 안에서 르네상스 시대 파란색 안료의 가치처럼, 보이지 않는 이 시대의 가치를 발견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글. 강현선 미디어아티스트
강현선 미디어아티스트 ┃ 서울대학교 서양학과 졸업, 센트럴세인트 마틴즈 컬리지에서 순수미술, 미들섹스대학교에서 소닉아트를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전공 박사를 수료했다. 2019년 [휴머니티] (광주디자인비엔날레), [Extraño Plano Vacío] (스페인, 마드리드), 2017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 등 다수의 그룹전과 2017년 [서울:낯선집] , 2014 [아파트 스케이프] 등 개인전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외 프로젝트 [Spring Breeze] (2016), [Sunshine Street] (2016), [A Rare Fantasy] 등 필름, 미디어파사드 등 영상, 디자인 프로젝트들을 기획 · 제작했다.
* 본 칼럼은 SM C&C Letter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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