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M*이 대세는 대세다. K-POP은 말할 것도 없고 록, 트로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EDM 비트가 접목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DJ HYO’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소녀시대 효연, 에스팀 모델이자 DJ인 키노키노 등 EDM에 푹 빠져 디제잉을 전문적으로 하는 셀럽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 Electronic Dance Music; 넓은 의미에서 일렉트로니카 장르를 통칭하기도 하며, 좁은 의미로는 현재 가장 유행하는
‘빅룸(Big Room)’ 스타일, ‘멜버른 바운스(Melbourne Bounce)’,‘프로그레시브 하우스(Progressive House)’ 등을 일컫는다.
EDM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 EDM 페스티벌 역시 약진하고 있다. 요즘 20대들에게 EDM 페스티벌은 음악을 모르더라도 꼭 한번은 가봐야 하는 핵심적인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EDM 페스티벌을 방문해 셀카를 찍고 자신이 ‘인싸’임을 인증한다. 이를 반증하듯 스펙트럼 댄스 뮤직 페스티벌,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과 같은 메가급 규모의 페스티벌에서부터 퇴근 후 직장인 디제이들이 모이는 ‘퇴디페’ 등 작은 규모의 페스티벌에 이르기까지 한해 수십 개가 넘는 EDM 페스티벌이 국내서 개최된다.
한국 EDM의 시작, 힙스터들의 놀이터
'EDM 페스티벌’이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 전, 국내에서 일렉트로니카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소비되던 장르였다. 이태원, 홍대 등지의 작은 클럽에서 DJ들을 중심으로 힙스터, 패션피플, 파티 고어*들이 모여 일렉트로니카를 듣는 ‘그들만의’ 파티가 종종 열리곤 했다. 그나마 페스티벌과 비슷하게 야외에서 진행된 파티는 가평의 펜션 뒷마당에서 소소하게 열린 ‘플로우(Flow)’ 정도가 전부였다.
* party-goer; 파티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그러던 2007년, 국내 EDM 페스티벌의 원류라고 볼 수 있는 ‘서울월드DJ페스티벌’이 처음 개최됐다. 관객의 연령대가 낮아 대학축제의 느낌이 강했고 라인업의 퀄리티가 ‘월드’DJ페스티벌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으나, 3일 동안 9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일렉트로니카를 처음 소개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해외 라이센싱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EDM 페스티벌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점차 퍼져나가던 때, 그 중심에서 음악과 파티를 즐기던 나는 이 ‘좋은 음악’을 더 큰 장소에서 더 많은 사람이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해외 유명 아티스트를 섭외해야 하는데, 당시의 글로벌 일렉트로니카 시장에서 아시아는 불모지와 같았다. 결국, 유명한 해외DJ들의 내한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이미 잘 알려진’ 해외 브랜드의 힘을 빌려야 했다. 나에게 그 최적의 파트너는 바로 영국의 ‘글로벌개더링(Global Gathering)’이었다.
그렇게 ‘글로벌개더링코리아’가 2009년, 한국에서 첫 해외 라이선스 EDM 페스티벌로 개최됐다. 글로벌개더링은 현재 EDM 페스티벌의 전형인 ‘DJ’ 중심 라인업뿐만 아니라 프로디지(The Prodigy), 언더월드(Underworld)와 같은 일렉트로니카 밴드 또한 매우 중요하게 다뤘기 때문에 같은 장르라 하더라도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골고루 접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 시작했기 때문에 실제 흥행 여부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당시 언더그라운드에서 일렉트로니카를 즐기던 수많은 팬이 글로벌개더링코리아의 개최를 반기며 발걸음했고, 이후 우리는 해를 거듭하며 행사의 규모를 키워 더 좋은 아티스트를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었다.
글로벌개더링코리아로 인해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가 서서히 넓어지던 2012년,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Ultra Music Festival, 이하 UMF)’로 불리는 미국 마이애미의 거대한 EDM 페스티벌 라이선스 브랜드가 한국에 입성했다. 이즈음 국내에서 팝과 EDM이 섞인 ‘POP-EDM’ 스타일의 음악이 성행하며 국내 EDM 시장 역시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이에 힘입은 UMF는 한국 시장 정착에 성공했다.
UMF Korea가 개최되기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의 이비자 시즌(주로 6~9월)에는 국내에서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시아로 투어를 오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해외 DJ들을 한국에 섭외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UMF의 아시아 진출로 투어링이 가능해지면서 국내 프로모터들은 해외의 유명한 DJ들을 대중들에게 더욱 손쉽게 소개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국내 EDM 페스티벌이 지금처럼 대중화가 된 가장 큰 계기라고 볼 수 있다.
해외 EDM 라이선스 페스티벌의 이면
해외 라이선스 EDM 페스티벌들이 국내 EDM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한 것은 사실이다. 이후 ‘월드 클럽 돔 코리아’, ‘EDC 코리아’ 등 무수한 해외 EDM 페스티벌들이 국내에서 앞다퉈 개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국내 EDM 페스티벌 시장에 순기능만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페스티벌과 같은 큰 규모의 행사는 오랜 기간의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경험이 적은 국내 기획자들이 금전적인 가치만 바라보고 너도나도 국내에 해외 유명 페스티벌을 개최하고자 나선다. 마치 프랜차이즈 음식점 하나 더 세우듯이 너무 쉽게 말이다. 그러다 보니 페스티벌 본고장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그 고유의 아이덴티티와 정신은 관객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고, 엉뚱하게 시장의 과다 경쟁만 불러일으켰다.
그 중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아티스트 섭외 과열 현상이다. EDM 페스티벌이 거의 매주 개최되는 페스티벌 춘추 전국시대를 맞은 요즘, 한국이라는 한정된 시장 안에서 서로 관객을 선점하기 위한 라인업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페스티벌의 몸집을 불리고 이름값을 키우기 위해 누가 더 출연료가 높은 아티스트를 섭외했는지, 얼마나 유명한 아티스트가 많이 출연하는지 자랑하기만 바쁘다. 몇 억 원의 출연료를 호가하는 아티스트 섭외 경쟁은 단기적으로는 좋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경쟁은 점차 과열되고 그에 따라 아티스트 출연료는 당연히 상승, 제작 비용 증가에 따라 티켓 가격 역시 상승하게 되고 관객들이 높은 티켓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판매량은 결국 줄어들어 초대권이 남용될 수밖에 없다. 이는 장기적으로 시장의 쇠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브랜드, 브랜드, 브랜드
하지만 화려한 라인업이 아닌, 독창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장기간 흥행하고 있는 페스티벌이 있다. 바로 투모로우랜드 (Tomorrowland), 센세이션(Sensation), 미스터리랜드(Mysteryland)다. 지난 2012년 이들의 기획사인 ID&T의 창립자 Irfan van Ewijk가 방한했을 때 그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아티스트 섭외 경쟁으로 한참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내게Irfan은 단호하게 ‘'아티스트가 아닌 브랜드가 가치를 만들고, 브랜드가 곧 재산이다’라고 말했다.
EDM 페스티벌은 라인업이 전부가 아니라 기획자의 빛나는 아이디어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더 돋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화려한 라인업만 쫓는 데서 빚어지는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브랜드가 중심이 되는 페스티벌을 기획해보자"
이런 목표로 당시 나는 하이네켄(Heineken) 마케터들과 함께 국내 첫 테마형 EDM 페스티벌인 ‘스타디움(5tardium)’을 탄생시켰다. 스타디움은 여태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5개의 퍼포먼스, 객석 어디에서든 최고의 쇼를 볼 수 있도록 펜타곤 형태로 구성된 5개의 스테이지를 통해 라인업만이 아닌 콘텐츠로도 충분히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했다. 몇억 원의 출연료를 호가하는 아티스트를 섭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의 티켓으로 양질의 경험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도였다. 하지만 결국 내가 스타디움 기획에서 하차한 뒤, 스타디움 역시 콘텐츠보다는 고가의 아티스트를 섭외하는 데 집중하고 티켓 가격을 상승시키는 등 타페스티벌과 같은 행보를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남았다. 이는 스타디움 역시 한국 페스티벌 시장 특유의 아티스트 라인업에 대한 대중의 강한 선호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펙트럼, ‘좋은’ 음악과 ‘좋은’ 브랜드가 만난 K-FESTIVAL
관객들이 EDM 페스티벌의 근간이 되는 EDM 음악 장르 그 자체에 관심이 없다면 EDM 페스티벌은 록 페스티벌과 마찬가지로 유행이 바뀌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결국, 좋은 페스티벌이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은 음악이 전제돼야만 하는 것이다.
고민 끝에 한국에서 ‘좋은 음악’을 만들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와 함께 K-FESTIVAL을 만들겠다는 꿈을 세웠다. SM엔터테인먼트가 K-POP을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발전시켜 전 세계에 널리 알렸듯이, 페스티벌 역시 K-FESTIVAL이라는 우리만의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음악’이 바탕에 전제돼야 하고,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프로듀싱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와 함께라면 K-FESTIVAL의 탄생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스펙트럼 댄스 뮤직 페스티벌(Spectrum Dance Music Festival, 이하 스펙트럼)’은 EDM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폭넓은 장르의 댄스 음악과 독특한 테마, 관객 참여형 콘텐츠까지 선보이는 스토리형 테마 뮤직 페스티벌이다. 스펙트럼은 테마형 페스티벌답게 퍼포먼스, 쇼, 코스튬, 환상적인 공간 장식 등 음악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함으로써 라인업에만 치우친 페스티벌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스펙트럼은 현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각기 다른 콘셉트의 네 스테이지로 구성됐다. (왼쪽부터 오른쪽, 위에서 아래 순으로) 메인 스테이지인 스타시티(Star City), 서브 스테이지 드림스테이션(Dream Station), 휴식의 공간 일렉트로가든(Electro Garden), 클럽보다 더 클럽 같은 클럽네오정글(Club Neo Gungle)
또 스펙트럼은 국내 독자적 아이덴티티의 페스티벌답게 역으로 우리의 브랜드를 해외에 수출하는데 목표가 있다. 이 과정에서 해외 EDM 라이선스 페스티벌의 지역화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펙트럼은 각기 다른 콘셉트의 네 스테이지로 구성, 해외에 수출 시 현지 각 상황에 따라 적합한 스테이지 만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그러나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스펙트럼 또한 아직 완벽하다고 하기엔 이르다. 타페스티벌에서 반복되는 문제점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신중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인업에만 치우치지 않기 위해, 거대한 프로덕션에만 치우치지 않기 위해 고심하다 보니 일반 대중들은 아직 스펙트럼의 정체성에 대해 ‘이 페스티벌은 이렇다’라고 쉽게 정의 내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중들이 서서히 K-Festival로 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고무적인 결과다. 더불어 해외 라이선스 페스티벌로부터 등을 돌린 관객들도 점점 우리를 돌아보고 있다. 시작은 느렸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노하우로 최선을 다해 앞으로도 우리가 만들어 나갈 K-Festival을 찾아 주는 관객에게 더 좋은 콘텐츠로 보답할 것이다. K-Festival의 가치는 아티스트가 아닌 브랜드가 만들고, 그 브랜드가 결국 K-Fesitval의 자산이 됨을 알기에 말이다.
글. 드림메이커 엔터테인먼트 김기범 이사 | 김니은 플래너
드림메이커 엔터테인먼트 김기범 이사 | 글로벌개더링코리아, 워터밤, 스타디움(5tardium) 등 국내에서 개최된 내로라하는 EDM 페스티벌을 기획 총괄했다. 현재 드림메이커 엔터테인먼트의이사로 재직하며 스펙트럼 댄스 뮤직 페스티벌을 비롯한 크리에이티브 콘텐츠를 지휘하고 있다.
* 본 칼럼은 SM C&C Letter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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