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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어바웃 이솝

이솝

 

‘자기다움’을 고집하는, 따뜻한 완벽주의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수립하고 광고 전략을 짜는 AP일을 하며 자주 접하는 과제 중 하나는 클라이언트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런칭한지 수년이 지나고, 연간 매출 1000억 원을 족히 넘기는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이 모호한 브랜드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고객의 취향이 변하고, 시장의 트렌드가 달라지고, 마케팅 책임자가 바뀌는 등 많은 변화 속에서 브랜드가 올곧게 자기다움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어려운 걸 꿋꿋하게 해내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코스메틱 브랜드 이솝(Aesop)이다. 실제로 이솝 제품을 사용해 보지 않았더라도, 제품 패키지나 매장 이미지를 보면 단번에 이솝임을 알아챌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이솝은 자기다움을 강하게 드러내는 브랜드인데, 1987년 설립 후 20년 이상 타협 없이 일관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있는 이솝의 자기다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솝의 자기다움 1. 제품

후배가 향수를 바꿨다고 한다. 로즈 베이스로.

궁금해서 향을 맡아보니 예상했던 장미의 플로럴 향과는 너무 달랐다.

 

이게 장미향이라고?”

이솝꺼라 장미도 우디(woody) 하죠? 전형적인 장미향과 달라서 좋아요”

 

말 그대로 이솝스러운 장미향이다. 흔하디흔한 게 장미향이고 시장에 출시된 장미 향수만 해도 수백 개는 될 텐데 후배의 향수는 기존의 장미향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장미향 뒤에 이솝 향수 특유의 풀, 나무, 이끼, 흙 내음 등 숲길이 연상되는 향. 마치 같은 장미라도 이솝다운 장미라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라케시 인텐스, 테싯, 휠 등 이솝의 향수는 제품마다 서로 다른 향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형제임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제품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있다. 이러한 이솝만의 제품 아이덴티티가 결국 수만 개의 코스메틱 브랜드들 사이에서 이솝만의 차별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솝
▲ Aesop Rozu Eau de Perfum (출처 : Aesop 홈페이지)

물론 브랜드의 색이 선명할수록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브랜드들이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자기다움을 잃어가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이솝은 소비자의 호불호에 이렇게 답한다.

 

아마 세계 어느 곳의 큰 도시에 가더라도 전형적인 이솝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비중은 인구의 약 2~5% 일 겁니다.
나는 그런 비주류들 이야말로 우리가 하는 일과 맞닿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국민 브랜드가 되고 싶어 하고, 매출과 고객은 다다익선이라 생각하는 시대에 2~5%의 비주류만을 위한다 해도 문제없다는 듯, 이솝은 그들만을 위한 최고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겠다는 초연함과 고집스러움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솝은 코스메틱 시장의 트렌드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솝의 상징인 보태니컬 성분의 엄선된 원료를 기반으로 하되, 최첨단 기술의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기보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한 연구를 거쳐 검증되고 기초가 잘 된 제품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일례로 이솝은 제품 하나를 개발하는데 3~4년을 투자하고, 역량의 80%를 제품개발에 투자한다. 예산의 60%는 패키지, 30%는 마케팅, 10%는 제품 개발에 투자한다는 코스메틱 업계의 통념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솝의 자기다움 2. 디자인

이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갈색병이다. 내가 이 갈색병을 처음 본건 친구네 집이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화장실 수납공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두 개의 갈색병. 영문 텍스트가 가득한 라벨이 붙여진 갈색병은 무척이나 세련돼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한 병엔 ‘Shampoo 블라블라~’ 다른 한 병엔 ‘Conditioner 블라블라~’라고 적힌 게 아닌가. 당시 한창 유행했던 전지현의 고운 머릿결 그림이 라벨링 되어 있는 우리 집 샴푸와는 너무 다른 친구의 취향에 흠칫 놀랐던 그날, 이솝이 호주 브랜드로, 헤어살롱을 운영하던 창립자 ‘데니스 파피티스’씨가 이솝 우화를 좋아해 작가의 이름을 차용해 만든 브랜드명이란 것도 알게 된 그날, 그때부터 이솝의 다자인을 좋아하게 됐다.

 

이솝의 화장품은 튜브 제품을 제외한 대부분이 의약용 갈색병에 담겨있다. 시즌마다, 제품라인업마다 각양각색의 패키지 디자인을 선보이는 화장품들과 비교했을 때 모든 제품에 비슷한 패키지를 고수하는 이솝의 모습이 무모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솝은 군더더기 없이 패키지의 근본적인 목적인 ‘제품 보호’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자외선으로부터 제품이 변질되는 걸 막아, 방부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갈색병(앰버 글라스)을 고집한다. 또 라인별로 패키지의 패턴을 비슷하게 유지해 사람들이 패키지가 아닌 ‘내용’에 집중하도록 한다. 그렇게 이 갈색병은 단순한 패키지를 넘어, 이솝의 아이덴티티가 된다.

 

이솝
▲ Aesop 제품들 (출처 : Aesop 홈페이지)

 

이솝 제품을 모르더라도 이솝 매장 앞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고 매장 안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이솝 매장은 강렬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 갈색병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이 마치, 제품을 작품으로 전시한 갤러리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똑같은 모습의 매장을 찾아볼 수 없다. 각 매장마다 그 지역의 특색을 반영하기 때문에 각기 다른 콘셉트의 갤러리에 온 느낌이다.

 

매장이 전부 다르면서도 이솝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솝은 여성 팔찌 ‘판도라(공용 팔찌에 자신이 좋아하는 펜던트를 끼울 수 있는 DIY형 팔찌)’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펜던트가 모두 다르고, 로고도 쓰여 있지 않지만, 팔찌 자체에 판도라의 정체성이 남아 있어 어떤 펜던트를 끼우든 판도라 팔찌라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매장 인테리어는 지역의 특색을 살려 서로 다르지만, 전 세계 어느 매장이나 음악과 향기는 똑같이 유지하고, 펜이나 종이도 정해진 물건만 사용하는 결벽을 보인다. 이렇게 디테일한 요소들이 모여 어느 지역의 매장을 가더라도 ‘다르지만 같은’ 이솝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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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esop 베를린-센다이-요코하마-마이애미-로스앤젤레스-제네바 매장 (출처 : Aesop 인스타그램)

 

이솝의 자기다움 3. 커뮤니케이션

개인적으로 이솝 같은 브랜드와 함께 일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이솝은 매스미디어 광고를 하지 않는다. 대신 브랜드가 소비자들에게 노출되는 접점인 '공간'에 심혈을 기울인다. 세컨드키친의 조수용 대표는 이솝의 핸드소프 제품을 끼우는 전용 금속 거치대를 구매할 때에도, 이솝 본사에 사용하려는 곳의 사진을 보내 적합 여부를 직접 허락받아야 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솝은 납품된 자사 제품이 어떤 곳에 어떻게 배치되고 활용되고 있는지를 일일이 체크하며 관리한다. 이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건, 소비자들은 이솝 제품이 노출되는 공간의 맥락 속에서 브랜드의 가치를 느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물건을 더 많이 팔기보다, 핸드소프 거치대 하나가 놓이더라도 '이솝스러움'에 부합하는 곳인지가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기에 고집스럽게 살피는 것이다.

 

이솝
▲ Aesop을 이용하는 공간들

 

이솝의 제품은 레스토랑, 호텔, 편집숍 등 감각적인 문화공간의 어메니티로도 종종 만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이솝 어메니티를 발견할 때면, 친한 친구가 취향이 비슷한 새 친구를 소개해 준 것 마냥 기분 좋은 설렘을 느낄 수 있다. 이솝은 이렇게 자신들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공간에 깜짝 등장해 ‘공간이 주는 시너지’로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소비자들과 소통한다.

 


이솝에 대해 알아갈수록,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확고한 브랜드란 생각이 든다.

지향할 것과 지양할 것들이 명확하기 때문에 군더더기 없지만

때론 디테일한 부분까지 완벽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브랜드.

요즘 유행하는 MBTI 성향검사를 한다면,

이솝은 아마도 따뜻한 완벽주의자정도로 나오지 않을까.

 

 

 

 

 

 

글. Brand Insight 2팀 문주화 플래너

 

 

 

 

 

※ 참고자료

- Aesop 공식 홈페이지_www.aesop.com

- Magazine B _Aesop

- 조선일보 Weekly biz_모든 고객 만족시키려다 모든 고객 잃어버린다

- LUXURY_오감 스킨십, 이솝과 떠나는 호주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