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회계팀 김나래
작년 11월 나는, 인생 '첫' 독립을 하게 됐다.
대학을 다니며 자취를 해 본 사람들에게는 별일 아닐지 모르지만, 학교나 직장 문제로 한 번도 홀로 거주지를 옮겨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꽤 큰 사건이었다. 대출은 항상 나와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이제 은행 없이는 의식주 중에 ‘주(住)’를 해결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과정이 설렜다. 은행 창구에 서류 몇 장 제출하고 큰돈을 빌리는 일, 부동산 테이블 앞에 앉아 특약 사항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서명하는 일. 적으로는 이미 어른이 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나이 서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침대 프레임부터 소파까지, 모든 가구를 직접 고르며 오롯이 내 취향으로 방을 채웠다. 엄마는 침대 머리맡에 물건을 두는 걸 지저분하다고 싫어하셨다. 하지만 지금 내 머리맡에는 립밤, 충전기, 책 한 권이 늘 올려져 있다. 본가에서는 어두운 가죽 소파를 썼지만, 지금 우리 집엔 아이보리색 패브릭 소파가 자리 잡고 있다. 항상 갖고 싶었던 동그란 러그를 사고, 다이소에서 벽지용 테이프도 사서 좋아하는 사진도 붙였다.
가장 큰 투자는 커튼이었다. ‘평생 함께할 나의 반려 커튼이니까, 이 정도 투자는 괜찮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 위안하며 거금을 들여 나비 주름의 커튼을 설치했다. 내가 상상한 대로 가구가 배치되고, 취향대로 집을 완성시켜 가는 건 참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설렘 뒤엔 서글픈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말에는 마음껏 침대와 한 몸이 되고 싶었지만, 평일 내내 내가 어질러 놓은 집을 치워야 했다. 택배 하나를 시켜도 온갖 쓰레기가 함께 오기 때문에 박스, 비닐, 일반 쓰레기 나눠서 버려야 했다. 택배가 오는 게 예전처럼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다. 혼자 사는 공간은 자유를 주지만, 동시에 과거의 내가 미뤄둔 모든 일은 당연하게도 내 책임으로 남겨져 있었다. 식탁 위에 올려둔 물티슈는 스스로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엔 그저 비유적인 표현으로 알고 웃어넘겼던 말이 있다. ‘숨만 쉬어도 돈이다’라는 말. 지금은 매월 말만 되면 자동으로 그 말이 떠오른다. 처음엔 나를 믿고 돈을 빌려준 은행이 그저 고마웠다(진심으로 고마워서 주거래 은행도 옮겼다). 하지만 지금은 매달 적지 않은 이자를 가져가는 은행이 꽤나 원망스럽다.
그리고 1년 사이 배운 것이 있다. 한여름 에어컨 전기세보다, 한겨울 난방비가 더 무섭다는 것. 작년 겨울, 우체통에 고지서가 잘못 들어온 줄 알고 앞면의 주소를 다시 확인했더랬다. 난방비 무서운 줄 모르는 자취 초보가 설거지를 따뜻한 물로 맘껏 한 벌 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은 설렘으로 시작해 얼렁뚱땅 사계절을 보냈고, 어느새 독립 1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니 '집과 친해지는 시간'이었다. 공구 세트를 사서 이사 전부터 말썽이던 문고리를 직접 교체해보기도 하고, 고장 난 현관 센서등을 손보기도 했다. 생필품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늘 쓰던 걸로 주문하게 됐고, 작은 집에서 유난히 크게 들리던 안내방송 소리에 적응도 했다.
이제는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와 꺼져 있는 불을 켜면, 안락한 나의 아지트에 온 느낌이 든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일기를 쓰거나, 새벽까지 영화를 보며 자유를 만끽하기도 한다. 휴대폰만 멀리하면 잠시 세상과 단절될 수도 있고, 나의 생체리듬에 맞춰 자고 일어난다. 익숙해지니 즐거움도 느껴진다. 물론 혼자 사는 일은 생각보다 고단하다. 하지만 그만큼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이제는 이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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